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TOUR INFO | 관광지정보
제목 고구려비사성
 

 

 

 

비사성은 한자로 卑沙城 외에 卑奢城 또는 필사성(畢奢城) 등으로도 쓴다. 중국에서는 대흑산(663.1m)에 있는 산성이라는 뜻에서 대흑산산성(大黑山山城)으로 부른다. 고구려 때 축조된 성이지만, 정확한 축조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.
랴오닝성[遼寧省] 진저우[金州] 유이향[友誼鄕] 동쪽의 대흑산 주위에 석회암으로 쌓은 거대한 석성(石城)으로, 고구려가 수(隋)•당(唐)과 전쟁을 할 때 적군의 침략을 막는 최전선 산성 역할을 하였다. 《삼국사기(三國史記)》에는 "사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고, 다만 서문(西門)을 통해서만 오를 수 있다"고 기록되어 있다.
그만큼 천혜의 요새이자 군사적 요충지였다. 수나라 양제(煬帝)가 614년(영양왕 25) 7월(음력) 마지막으로 고구려를 침공할 때 비사성까지 진격했으나, 고구려군은 하나뿐인 성문을 굳게 닫고 저항해 수나라군은 단 하나의 성도 빼앗지 못하였다. 이로 인해 수나라는 결국 건국한 지 40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.
이후 645년 4월, 당나라는 4만여 명에 달하는 대규모 수로군으로 비사성을 공격한 뒤, 다음달 초 정예병으로 서문을 기습 공격하였다. 이 공격에서 고구려군은 중과부적으로 패하고, 퇴로가 없어 살아남은 8,000여 명은 포로가 되었다. 그러나 당 태종이 이끄는 막강한 당군이 안시성싸움에서 패하자 수군도 모두 철군하고 말았다.
수나라와 당나라가고구려를 칠 때 산동 등래에서 바다를 건너오면 맨 먼저 비사성에서 싸웟다,
지금은 관광지로 개발되어 대흑산 주위에 새로 성벽을 쌓았는데, 고증을 하지 않아 고구려의 축성법과는 전혀 다른 성벽이 되어 버렸다. 그나마 1~2m 높이의 고구려 때 성벽이 일부 남아 있지만, 동북공정(東北工程)이 진행되고 있어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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